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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있고, 숨 쉬고, 살아가는 시공간은 나의 살에 스며든다. 물리적 세계는 늘 변한다. 그리고 나의 살은 늙고 손상된다. 언젠가 나의 살은 사라진다. 살이 사라지면 퇴적된 것들 도 사라진다. 사유, 삶, 사랑했던 것들, 먼저 떠난 모든 살들에 대한 정보는 분해될 것이다. 이런 것이 나는 못내 아쉬운 것이다. 나는 이 퇴적물들을 붙잡으려고 작업을 한다.

 

살이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살이 사라지면 그것이 담고 있던 그 모든 것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갑작스러운 죽음, 사라지는 시간을 마주했을 때 나는 큰 의문에 빠지게 된 것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행동하던 누군가가 영영 동력을 잃고 눕게 되면, 도대체 그 정보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런 생각 속에서 나는 나의 정보를 병에 걸리지 않는 무언가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정보를 복제해서 증식해 나간다. 그 정보는 가상 세계에서 또 복제되며 떠돌기도 하고 누군가의 집에 걸리기도 한다. 나는 세상에 나를 그렇게 채워 나간다. 나의 정보를 인식할 수 있는 생명체가 있는 한 나는 오래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작업 속의 세계를 구성할 때에는 이전에 경험한 것과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가 가능한 것의 혼합이 이루어진다. 우리는 동그라미를 상상할 수 있으며 이것은 물리 세계에서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네모난 동그라미는 상상할 수 없으므로 존재할 수 없다. 나는 시각적 상상이 가능한, 그러니까 존재하거나(또는 했거나) 존재 가능한 것을 이용하여 작품을 만든다.

 

모든 종류의 기억은 퇴적물이 된다. 이 퇴적물 위로 존재하는 형상과 존재 가능한 형상이 구조물을 이룬다. 이러한 세계의 특징은 사건이 시간 순서대로 나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퇴적물은 물리적 세계에서의 퇴적물과는 의미가 다르다. 물리 세계의 퇴적물은 시간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인 구조를 지니고 있으나, 두뇌 속에서 형성된 퇴적물은 오직 한 겹으로 마음의 표면을 감싼 것이다. 무언가를 기억해낼 때에 그 기억이 형성된 시 점을 함께 생각하는 것은 그저 일종의 꼬리표로서 뿐인 것이다. 내면에 저장된 각각의 기억은 선행되고 후행 되는 식의 시간이라는 개념은 없으며, 모든 사건이 언제나 동시에 일어난다. 내가 구현한 화면은 그 세계를 보여주는 창으로 기능한다.

 

나의 회화는 드로잉의 집합체이며, 드로잉은 소서사의 집적이다. 나는 중요치 않게 여겨지는 이야기들에 귀 기울인다. 작은 이야기를 중요한 이야기로 만들어가며 잊힌 누군가의 삶을 기록한다.